글쓴이 : 윤홍섭 작성 : 2012.06.24 조회 : 4,280 |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32만원을 받았는데 8년째 연락이 끊긴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중단됐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합니다." 6ㆍ25참전유공자인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최기옥(81)씨는 매달 20일 들어오던 기초생활수급비가 끊겨 참전명예수당 12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1950년 19세의 나이로 입대해 경남 합천 전투에 참여한 뒤 예비역 일등중사로 제대한 최씨지만 정부의 보훈 정책 혜택을 제대로 받은 적은 없다. 특히 장성한 자녀가 있음에도 가정형편 등으로 연락이 끊기고 혼자 생활하는 최씨의 경우 생활고는 더하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장성한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어려운 데다 정작 본인은 고령으로 경제활동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강동구 성내동의 전영태(88)씨는 1950년 육군 이등병으로 입대해 예비역 중위로 제대한 상이 7급의 참전유공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각종 수당을 합치면 매달 47만원이 전부다. 무엇보다 전씨의 경우 참전 과정에서 두발의 총탄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하다. 전씨는 "처음에는 3,400원 정도 받다가 최근 들어 47만원을 받고 있다"며 "건강이 좋지 않아 경제활동은 하지 못하고 있으며 복지단체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겨우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6.25참전유공자나 비교적 최근인 월남전참전자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이 독립유공자다. 대부분의 독립유공자들은 옥고를 치르다 또는 병마와 싸우다 작고한 만큼 이들의 후손에 대한 지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독립운동가 아성(牙城) 방한민 선생의 손자 방병건(67)씨는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정부 지원은 거의 없는 수준"이라며 "독립유공자는 일단 입증 자체가 어려운 이유로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 이후에 작고하면 연금이 나오지 않고, 오로지 해방 전에 작고해야 연금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독립유공자 선정과 포상 기준은 해방 전후로 나뉘지 않으나, 유공자가 해방 전에 사망하면 그 자녀와 손자 1인에 대해 연금이 지급되는 반면 해방 후에 사망하면 자녀까지만 연금이 지급된다. 또 다른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해방 후 친일파들이 득세하면서 정작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던진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대한민국에 발을 붙여 살기 힘들게 됐다"고 토로했다. ◇참전수당 달랑 12만원…독립유공자 더 어려워=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보훈대상자는 90만 5,280명이다. 유공자 본인이 72만 4,610명이며, 유족이 18만 670명이다. 분류도 다양하다. 크게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전몰ㆍ전상ㆍ순직 군경 ▦4ㆍ19 혁명유공자 ▦6ㆍ25 및 월남전 참전 유공자 ▦5ㆍ18 민주유공자 ▦특수임무유공자 등으로 구분된다. 보상수혜 내용을 보면 ▦보훈급여금 ▦교육지원 ▦취업지원 ▦의료지원 ▦대부지원(300~3,000만원, 연3%) ▦주택지원 ▦기타지원 등이다. 다양한 지원 모두 그 대상이 전몰ㆍ전상ㆍ순직 군경이냐, 참전유공자냐, 유공자 본인 또는 후손이냐 등에 따라 또 다르게 적용된다. 그러나 보훈행정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겐 이러한 지원이 멀기만 하다. 상이용사가 아닌 6ㆍ25 참전자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은 2001년에서야 시작됐고, 지난해부터 참전자 명예 선양 차원으로 18만 6,000여명에게 참전명예수당(월 12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이마저도 네 차례에 걸쳐 인상돼 오다 지난해에 3만원이 오른 금액이다. 참전수당은 만 65세 이상에게만 지급된다. 윤창호 월남전참전용사회 사무총장은 "12만원은 터무니 없이 적은 액수인데다 무엇보다 나이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 봉사한 대가로서는 너무 야박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보훈행정이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것은 보훈당국의 낮은 위상과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물론 제대군인 중심의 미국ㆍ호주ㆍ캐나다 등과 우리의 보훈행정을 단순비교 할 수는 없지만 보훈행정의 사각지대를 채워줄 행정력은 많이 부족하다는 게 일반론이다. 보훈교육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오일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가가 사각지대를 계속 발굴해야 한다"며 "대상자들이 스스로 찾아오길 기다리기 보다 국가가 나서서 직접 각종기록을 확인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훈당국 위상 높이고, 재정 확충 필요=유공자 인정의 기준을 명확히 해 유공자가 돼서는 안될 이들을 선별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친일파나 간첩활동에 관여했던 이들이 유공자로 지정돼 지원을 받는 사례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보훈학회 명예회장인 유영옥 경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유공자가 돼선 안될 이들이 된 사례가 많다"며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우리의 유공자가 너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효과적 보훈행정을 위해 유공자로 선정되지 않아야 할 이들을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유 교수는 "우리의 보훈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은 차관급"이라며 "그러다 보니 예산도 적고 보훈 행정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보훈처의 지난해 예산은 4조 4,260억원으로 정부 예산의 1.76%수준이다. 이 금액으로는 공식 집계된 90만명의 대상자를 지원하기에도 빠듯하다. 아울러 지난해 말 기준 4.4%의 물가상승률에 비해 보훈급여금 인상률은 4% 정도다. 실질적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물가상승률에 맞춰 급여금을 인상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셈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보상금을 가계소비지출액과 맞추기 위해서는 물가상승률 이상의 인상이 필요한데 재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의 위상이 정권교체 등 정치적 요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잦았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1961년 창설된 군사원호청(지금의 국가보훈처)을 근원으로 하는 보훈처는 1962년부터는 장관급 기관이었다. 그러다 1998년 IMF외환위기를 겪으며 차관급으로 내려갔고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다시 장관급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또 다시 차관급으로 격하됐다. 유 교수는 "국무회의에서 발언권이 없는 차관급이 우리 보훈의 현실"이라며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이 결국 적은 예산과 소홀한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경력이 오히려 제 인생의 발목을 잡은 느낌이 듭니다.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국가를 위해 나서겠습니까."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참전 유공자의 말처럼 호국보훈의 달 보훈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지원할 대책이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권대경기자 kwon at sed.co.kr 박윤선기자 sepys at s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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