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철수 작성 : 2016.10.09 조회 : 8,786 |
제목 : 한국 반대해도 미국은 때릴 수 있다 [미래한국] 전경웅 객원기자 등록일자 : 2016.10.07. 미국의 북폭 시나리오 1994년처럼 북폭 계획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미국과 철저히 정책 공조를 이루고 북핵 제거 방안을 먼저 제안해야 한다. 2016년 9월 16일 미 최고의 외교 싱크탱크 외교협의회(CFR)는 워싱턴DC에서 ‘북한 핵도발과 중국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마이클 멀린 전 미군 합참의장은 “북한이 ICBM(대륙간 탄도탄) 등의 개발에 성공, 미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미 정부는 자위권 차원에서 북한을 ‘예방 타격(Preemptive Strike)’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멀린 전 합참의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미국은 한국, 일본과 달리 “적이 위협한다면 군사적 대응을 할 의지도, 능력도 있다”면서 “미군은 이론적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대나 핵 실험장을 파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이클 멀린은 이날 토론회에서 “미국은 방어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만약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갖추고, 미국을 위협한다면 자위 차원에서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핵무기를 보유한 김정은이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북한이) 한국, 일본을 공격한다면, 동북아 정세가 매우 불안정해질 것이고,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미국은) 매우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조야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핵 예방 타격론(論) 마이클 멀린 전 합참의장은 물론 이날 CFR의 토론회에 나온 사람들은 “오바마 정권의 대북기조인 ‘전략적 인내’는 결국 실패로 드러났다”면서 “지금부터라도 중국 정부가 북한을 압박, 김정은 정권이 개혁개방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한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되든 힐러리가 되든, 차기 미 대통령은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 문제를 임기 초 최우선 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국내 좌파성향 매체 일부는 “마이클 멀린 전 합참의장의 말은 미국이 북한을 타격한다는 게 아니라 ‘잠재적 옵션’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며 미 정부의 ‘북폭’ 가능성을 애써 축소하려 했지만, 뒤이어 나온 각종 언론보도는 이들의 주장을 재반박하는 꼴이 됐다. 이후 미 백악관에서도 북핵 해결 방안 가운데 하나로 선제 타격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지난 9월 22일(현지시간) 미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서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은 북한 선제 타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말하겠다”고 전제한 뒤 “일반론적으로 말해, 선제 타격은 군사작전 사안으로, 이런 군사행동에 대해서는 (동맹국이나 정치권과) 미리 논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조시 어니스트 미 백악관 대변인의 답변은 언론들, 특히 한국 언론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금까지 미 정부는 국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지금은 말할 수 없다”거나 “관련 정보가 없다”며 답변을 회피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북한을 특정하지는 않겠다”면서도 ‘선제 타격’을 직접 언급한 때문이다. 미국에서 “북핵 해결을 위해 선제 타격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질 무렵, 대만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미국의 북 핵시설 선제 타격을 묵인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소식이 나왔다. 지난 9월 18일 대만 <중국시보>는 중 공산당 외교 소식통과 일부 학자들을 인용, “중 공산당이 북한 체제의 붕괴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김정은을 포기하는 것까지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 <중국시보>에 따르면, 중 공산당의 ‘김정은 포기 전략’에는 북한 핵시설과 탄도 미사일 관련 시설에 대한 미국의 정밀타격과 함께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에 대한 참수 작전까지도 묵인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 신문은 “오바마 정부는 2016년 초부터 북한 핵시설을 타격한다는 구상을 준비했지만 중국의 반대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마련하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지난 9월 9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중 공산당 지도부에서는 미국의 선제 타격을 묵인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놨다”는 중 공산당 외교 소식통의 주장을 전했다. 중 공산당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대만 <중국시보>는 스인훙 인민대 국제관계학 교수의 주장도 전했다. 그에 따르면, 중 공산당 지도부는 미국의 북핵 시설 선제 타격이 군사적인 분야에 한정되고, 기간은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국한되며, 미국이 이를 기회로 북한을 점령해서도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여기에 김정은은 포기하더라도 사드 미사일의 한국 배치는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도 더했다. 미 워싱턴에서 나오는 북핵 제거 계획, 대만 언론을 통해 나온 중 공산당 지도부의 북핵 선제 타격 묵인 소식 등은 한국 사회에 1994년 6월 북핵 위기를 새삼 떠올리게 했다. 실행 직전까지 갔던 1994년의 북핵 폭격 한국 사회에서는 20년 넘게 “클린턴 미 행정부의 북핵 선제 타격을 막은 것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강한 반대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회담 덕분”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2015년 12월 펴낸 회고록 <핵 벼랑에서의 나의 여정>이나 1999년부터 2000년 사이 일부 월간지에서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 보면, 1994년 6월 ‘북폭 중단’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윌리엄 페리 전 장관이 회고록에 적은 내용 가운데 1993년 3월 북한 김정일이 NPT(핵확산 금지조약)을 탈퇴한 이후부터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 때까지 일어났던 일들은 한국인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으로 생각됐다. 윌리엄 페리 전 장관은 1993년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선 뒤 미 국방부 부장관에 발탁됐다. 이때 북한은 NPT를 탈퇴하고, 한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이 자리에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만다”면서 한국 측 대표들을 향해 “당신들도 살아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한다. 윌리엄 페리가 국방장관이 된 1994년에는 북한 김정일이 ‘영변 핵시설에서의 폐연료봉 재처리’를 천명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원자로에서 폐연료봉을 꺼내 재처리를 시작하는 날을 북핵 제거를 위한 선제 타격의 디데이로 잡았다고 한다. 1994년 6월 16일이다. 윌리엄 페리 전 장관의 회고에 따르면,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NPT를 탈퇴할 때부터 군사적 옵션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4년 들어 북한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NPT 탈퇴와 영변 핵시설 가동 등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이해 봄부터 한국과 주변 지역에 1개 기갑사단이 무장할 수 있는 M1A2 에이브람스 전차, 1개 대대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 미 7함대 예하 항공모함 강습단, 1000여 명의 특수전 병력을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고 한다. 1994년 한국 내 미 민간인 소개 훈련도 이와 함께 한국에 있는 미국 민간인 소개 작전, 즉 N.E.O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한국에 머물던 미국인은 10만여 명,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주한 미 대사관에서는 이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비상시 집결지 등에 대해 알려줬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외부로 유출된 N.E.O 계획에 따르면, 주한미군 가족과 비전투요원, 외교관 및 그 가족이 1순위, 한국에 거주하는 일반 민간인과 미 시민권자가 2순위, 미 정부의 이익에 직결되는 소수의 한국인이 3순위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민간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애완동물까지 철수시킨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당시 N.E.O 계획을 보면,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미국인들은 1차로 평택, 오산 등으로 집결한 뒤 최우선 순위 민간인은 항공편으로, 다른 인원들은 열차 또는 버스, 헬기로 부산 등으로 이동해 美정부가 준비한 배편으로 일본으로 철수한다고 돼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6월 6일, 계획만 잡혀 있던 N.E.O의 훈련을 실시한다. 이 소식이 일부 국내언론에 전해지면서, 한국 사회는 전쟁이 임박했다는 공포에 휩싸인다. 당시 훈련이 여차하면 실제 미국인 철수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당시 김영삼 정부와 정치권, 정부 관계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1994년 6월 16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서 폐연료봉을 꺼내 재처리하기 시작했다는 정황이 파악된 것이다. 윌리엄 페리 전 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북핵 시설 선제 타격은 북한이 영변 원자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기 시작한 뒤 닷새 뒤인 1994년 6월 16일 정오로 예정돼 있었다고 한다. 이미 한반도 주변에 배치돼 있던 전력들은 백악관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러다 디데이 에이치아워(D-day H-hour, 군사작전 개시 시간)를 불과 한 시간가량 앞두고, 당시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찾아 김일성과 만나고 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폐연료봉) 재처리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이 제재 및 미군 증강을 유보하고 협상에 나설 수 있느냐”는 김일성의 역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클린턴 행정부는 ‘북핵시설 선제 타격’ 작전을 연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넉 달 뒤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과 핵시설 폐기 및 이를 대체할 경수로 건설을 내용으로 한 합의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KEDO(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의 시작이었다. 윌리엄 페리 전 장관의 회고 내용만 보면 긴장감이 덜하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한국군은 미군과 별도로 전군이 준비태세에 돌입, 전시 물자를 수령하고 전시 임무를 배우는 등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전방 지역에서는 실탄을 지급하고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22년 후 지금은 … 22년이 지난, 2016년 10월 현재 한국과 미국의 분위기는 어떤가. 사실 미국에서 북한을 선제 타격하겠다는 뜻을 처음 밝힌 사람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4월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탄(SLBM) 발사 시험을 벌여 성공하자, 김정은을 향해 “정권을 파괴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미국 내부에서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조용히 연구해 온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후로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한 미국 조야의 반응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11월 미 대선의 주인공인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또한 9월 하순 유세 때부터 북한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 문제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치권과 정부 관계자들은 사드의 한국 배치에 이에 대한 중 공산당의 반발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정부도 모르게 북한 핵시설과 미사일 시설에 대해 선제 타격을 할 수 있다고는 상상도 않고 있다. 이런 몇 가지 사실들이 1994년 6월과 2016년 10월이 오버랩 되도록 만들고 있다. 물론 1994년 6월과 2016년 10월은 22년이라는 시간 차이 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이 이미 핵무기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는 북폭 계획을 실행할 경우 북한 김정일이 전면전을 시도, 장사정포 공격에 따라 수도권 등에서 한국인 100만여 명, 수개월 동안 지속되는 전쟁으로 미군과 한국군 100만여 명 이상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북한이 갖고 있는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과 중 인민해방군의 전쟁 개입 또한 문제였다. 반면 2016년 10월 미 정부의 고민은 크게 다르다. 북한이 수도권을 공격하는 것보다 미군이 있는 일본 주요 도시와 오키나와, 괌을 향해 핵탄두를 장착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한국 내 미군 증원 병력이 들어오는 항만 도시인 부산, 포항, 울산, 미 공군이 사용할 수 있는 김해, 군산, 오산 등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다른 문제는 22년 전과 달리 이제는 북한 곳곳에 핵무기 개발시설이 있으며, 중 업체를 통해 도입한 특수차량을 개조해 만든 ‘이동식 차량 발사대(TEL)’가 100여 대 이상이어서 공군력을 동원한 선제 타격만으로는 북한 미사일 관련 시설을 완벽하게 제거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마지막 문제는 한국 사회의 여론이다. 22년 전 한국은 핵무장은커녕 “미국만 믿자”는 의존심리가 강했다. 반면 2016년 10월에는 한국 내부로부터 자체 핵무장과 미 전술핵 재배치 등의 강경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22년 동안 북한의 핵 협박에 시달린 한국 사회의 피로가 한계에 다다른 탓이다. 이는 어떤 면에서 불행 중 다행인 부분이다. 1994년 6월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한국을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약했다. 반면 2016년 10월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에 대응하는 전략적 파트너라는 기조를 바탕에 깔고 한국, 일본과 정책을 만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 일각에서 중 공산당의 목소리를 대변함에도, 한국 정부에게 이들의 설득을 맡기고, 한국과 똑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현재 상황만을 보면,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1994년 6월처럼 독자적인 선제 타격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집권할 경우다. 트럼프는 물론 힐러리 또한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오바마 행정부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경하고, 이들은 한국이 지닌 동맹국의 가치를 오바마 행정부, 아니 조지 부시 행정부보다도 더 낮게 볼 가능성이 높다는 흔적이 유세 연설과 과거 장관 시절의 행적에서 드러난다. 한국 정부가 1994년 6월과 같은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오바마 미 행정부는 물론 차기 미 대통령과 철저히 공조하는 것은 물론 어설픈 민족주의적 감정에 젖어 북한 편을 들지 않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 능력을 어떤 수단으로 제거할 것인지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한반도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재게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미래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료정리(2016-10-10) 대한해외참전전우회 창원시지회 사무국장 겸, 보훈지킴이 창원시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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